수능일입니다.
수능 도입 역사상 최초로 한파주의보가 발령될거라 하니 우리 수험생들 가뜩이나 기 못펼텐데......날씨까지 도와주지 않네요.
다행인 것은 특별히 누구 하나 한테만 콕 집어서 추운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64만 621명 모두에게 똑같은 조건이라는 점입니다. 그러고보면 모든 수험생들 보고 화이팅 하라는 얘기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습니다. 그건 마치 한일 축구 결승전에서 두 팀 모두 잘 싸우라고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어차피 수능 시험은 제 실력을 측정하기 위한 시험이 아니라 남보다 얼마나 앞서는가를 따져서 뽑기 위한 선발시험입니다. 내가 시험을 망쳐도 친구가 더 망치면 난 합격하는 상대평가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내가 잘봐도 친구가 더 잘보면 떨어질 수도 있는 참 가혹한 시험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자식은 시험 잘보고, 남 자식은 망치라고 신에게 뻔뻔하게 기도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대략난감일 수밖에 없지요.
수많은 입시제도가 있어왔지만 여전히 문제일 수밖에 없는 것은 결국은 줄세우기라는 점이고, 뽑기라는 점입니다. 그 큰 틀을 깨뜨리지 않은채 줄 세우는 법, 뽑는 법만 백날 바꾼 들 입시과열이 해소될 길은 없습니다. 입시제도를 매번 바꾸는 건 두 가지 이유입니다. 정부당국이 뭔가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쇼와 부분적으로 누군가에게 이익이 되고 안되고의 차이입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교육당국이 쥐고 있지 않습니다. 학벌에 따라 임금격차가 천차만별인 이 사회가 문제입니다. 말로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면서 실제 임금과 대우는 귀천이 엄연한 현실이 바뀌지 않고는 지옥같은 입시경쟁에서 아이들을 빼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이중적입니다. 한편으로는 실날하게 이런 체제를 비판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자신이 지닌 기득권을 내려놓기 싫어하고, 나만은 우리 자식만은 상위계층에 속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니 어떻게든 사교육이라도 시켜서 기차의 앞칸으로 옮겨타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보다 뒷칸에 탄 사람들을 향해 게으른 자들이라 비난하고, 개인의 무능이니 어쩔 수 없다라고 개인의 문제로 책임을 돌립니다. 내가 뒷칸에 있는 것은 억울하면서 정작 그 욕망의 기차에서 내릴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연대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새 우리의 삶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전쟁터 같은 삶이라는 표현을 거침없이 씁니다. 내가 상대를 먼저 쏘지 않으면 내가 맞아 죽는다는 인식이 팽배합니다. 어찌하여 상대와 총알 대신 꽃을 나누고, 함께 평화를 나눌 생각을 우리는 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서로가 가진 빵을 나누며 웃고 떠들 생각을 하기 보다는 내 빵을 누가 훔쳐갈까봐 벌벌 떨고, 심지어는 남의 빵까지 기회만 된다면 빼앗고 싶은 것일까요?
그러고보니 시험보는 악몽을 꾼지가 꽤 되었습니다. 몇 해전까지만 해도 일년에 몇차례 꼭 내일이 시험인데 시험공부를 하나도 안해서 깜짝 놀라 새벽에 잠을 깨곤 했습니다. 대학졸업하고 시험 볼 일 없이 산지가 20년이 훨씬 넘었는데도 악몽이라니......한국인의 시험 압박이 잠재의식 속에 얼마나 뿌리깊게 박혀있는지 잘 보여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지긋지긋 했던 그 일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물려줄 수 밖에 없는 저 자신이 참 한심하네요. 시험공부 미루고 있다가 시험을 코앞에 둔 날 벼락치기 공부를 하면서 느꼈던 절망감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끝내 시험지를 앞에 두고 했던 후회들. 이번만 시험 잘보게 해주면 다음부터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신께 뻔한 거짓 기도를 드렸던 일들. 그리고 끝내는 그냥 내가 공부한만큼만 시험보게 해달라고 나 자신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울 때야 찾아든 평화. 그 일이 계속 반복된 세월이었습니다.
64만 621명의 수험생들이 최소한 후회없이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실수해서 아는 문제 틀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수능 시험이 인생의 전부가 아닌, 결승점도 아닌 일부이고, 한 출발점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애쓴 수험생들, 그리고 뒷바라지 하느라 몸고생, 맘고생한 학부모들 모두에게 심신의 평화가 함께 하길 바랍니다.
다음 세대에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꼭 끊어줄 수 있기를 감히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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