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2009여름북유럽여행

2009년 7월 30일 (목) 오후 6시 16분/대한항공 기내(서울-프랑크푸르트)

온 독서논술 2009. 8. 22. 21:43

2009년 7월 30일 (목) 오후 6시 16분/대한항공 기내(서울-프랑크푸르트 구간)

 

춥다. 에어컨이 너무 세다. 괜히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와서 고생이다. 담요를 뒤집어 쓰고 있다. 기류 변화가 심해서인지 이따금씩 비행기가 출렁거린다. 옆에 있는 유정이 손을 꼭 잡는다. 유정이는 잠으로 그 공포감을 이겨보려 애쓰고 있지만 아마 무척 두렵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기도가 절로 나온다.

자꾸 안좋은 생각이 나서 떨쳐버리려고 애쓴다. 이런 일은 여행 출발 며칠 전부터 시작되었다. 자꾸 만약 어떤 일이 벌어진다면 가정하게 되고 그러다가 황급히 그 생각을 지우게 된다. 그러고보면 갑자기 이 세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는데 나 자신이 남은 자들을 위해 정리해놓은 것이 없다. 하긴 그것은 내 몫이 아니라 산 자들의 몫이다라고 생각하면 신경 쓸 일이 아니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가 없는 세상에서라도 내 뜻이 반영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면 확실히 정리해두는 것이 좋은 일일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찬들이와 통화를 했다. 아빠가 보고 싶다라는 말에 울컥했다. 아빠 마음을 딸이 모르면 누가 알겠냐는 찬들이 말에 따뜻해짐을 느꼈다. 캐나다에 가 있는 찬들이는 오늘따라 무척 기분이 좋아 보였다.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해야할 중요한 일 중 하나가 기록이다. 낱낱이 기록해보는 작업 말이다. 그것이 바깥의 일이 되었건 내 마음 속의 일이 되었건 적어보는 작업을 통해서 글쓰기의 가능성을 시험해봐야겠다. 여태까지 난 변명아닌 변명을 해왔다. 글쓰기에도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데 난 시간이 없어서 글을 못 썼다고 말이다. 과연 그런 문제인지 아니면 글쓰기의 재능이 없는 것인지 확인해봐야겠다. 또 비행기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유정이가 느낄 불안을 조금이나마 잠재워줘야겠다. 사실 그것은 내 불안을 축소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서비스하는 승무원들을 보면 큰 일이 아닌 다반사로 있는 일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마음이 놓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약간의 불안감을 떨칠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번 여행에서 또 하나 중요하게 해야할 일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 입문서를 완독하는 일이다. 500여 페이지 이상으로 이뤄진데다 그 내용 역시 만만치 않아서 과연 완독할 수 있을까 의문이지만 그래도 도전해보는 것이 중요하리라. 가장 큰 목적은 나는 누구인지 조금이나마 그려낼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철학적 고민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서 배경지식을 키우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글을 쓰는데 가장 큰 난점은 정확한 묘사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어디까지 써야 하는지 감을 못잡겠다는 것이다. 윗글에서 찬들이 이야기만 하더라도 찬들이가 누구인지? 왜 캐나다에 가 있는지 그런 부분에 대해서 시시콜콜하게 써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핵심만 적고 있다. 결국 앞 이야기부터 차분하게 써 내려가는 자세가 부족하기 때문에 좋은 글이 완성이 안되는 것이 아닐까?

또 한가지는 정확한 지식의 부족이다. 사실에 바탕을 두고 써야 하는데 정확한 용어가 생각이 나지 않을 때도 있고 아예 모를 때도 있다. 예를 들면 지금 이 비행기는 고도 몇 미터를 얼마의 속도로 날고 있는지 사실은 비행 정보판을 찾아서 확인해보고 써야 하는데 그것이 귀찮아서 그냥 막 넘어가고 있다. 이런 철저하지 못한 태도가 글쓰기에 방해가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 한계를 그대로 가진 채 글쓰기에 도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