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2009여름북유럽여행

2009년 7월 30일 (목) 오후 9시 55분/대한항공 기내(서울-프랑크푸르트)

온 독서논술 2009. 8. 22. 21:45

2009년 7월 30일 (목) 오후 9시 55분/대한항공 기내(서울-프랑크푸르트 구간)

 

9시간 째 날고 있다. 지금도 러시아 상공 속력 869km/h, 고도 11615미터 앞으로도 두 시간 여가 더 남았다. 다행히 기류는 안정을 찾았나보다. 조금 전 저녁을 먹었는데 북유럽은 시차로 인해 조금 있다가 환승 후 다시 한 번 저녁을 먹는다고 한다. 기내식으로만 밥을 먹어서 괜찮을까 싶었는데 기우다. 네 끼를 먹게 된다는 것을 계산하지 못했다.

두차례에 걸친 해프닝에 이어 세 번째 해프닝은 화장실을 가려는 순간 일어났다. 노트북을 접어 가방에 넣고, 의자 책상도 접어서 넣고 그리고 일어서려는 순간 난 다시 앉고 말았다. 아니 일어설 수 없었다. 그렇다. 안전벨트를 하고 있었던 것을 깜빡했다. 오늘 정말 왜 이러는 것인지? 게다가 샌달에 발이 잘 안들어갔다. 가뜩이나 꽉 조이게 셋팅된 샌달이었는데 아마 높은 곳에 올라오니 발이 부었나보다. 그래서 잠그는 것을 포기하고 신발을 질질 끌고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 앞에 아무도 없는데 사용중이라는 표시가 들어와있었다. 그래서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나오지 않아서 좀 이상하다 싶었다. 다시 한번 사용중인가 확인을 해보았는데 분명 사용중을 알리는 빨간 표지가 나와 있었다. 그렇게 몇 분을 기다렸을까 여전히 사람은 나오지 않는다. 답답한 마음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 확인했더니 이럴수가 문이 열려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누가 사용중으로 돌려놓은 채 문을 살짝 닿아놓고 간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기다린 나 자신이 우스워 픽 웃음이 나왔다.

승무원의 말대로라면 분명 화장실에 양치도구가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뒤져봐도 양치도구는 보이지 않는다. 처음 비행기를 타보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 낯선지? 왜 괜시리 주눅이 드는지. 결국 칫솔질은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긴 비행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서 영화를 봤다. 권상우 주연의 슬픈 사랑 이야기는 몰입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사랑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해준 영화였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정말 영화 속 사랑이야기이다. 고아인 두 남녀가 함께 살게 되었다. 설정 자체가 선뜻 공감이 가지는 않았다. 그 두 남녀는 서로를 사랑했지만 그 마음을 고백하지 못한다.. 그 까닭은 남자가 유전적 질병을 가지고 있어서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이다. 그 사실을 여자 친구에게 밝히지 못하고, 우연한 기회에 그 사실을 알게된 여자 친구 역시 자신이 남자 친구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생각한다.

유정이가 칫솔을 찾아왔다. 역시 나보다 낫다. 여자 화장실에 있었단다. 그러니 내가 찾지 못할 수 밖에. 이 닦으러 가야겠다. 12시간만에..

아 그런데 이게 뭔일. 화장실 앞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벌써 이를 닦기 시작했는데. 거품 한가득 물고 기다린다. 여성을 배려하는 분위기가 비행기에서도 확 느껴진다. 여성전용화장실 하나에 남녀공용 화장실이다. 여성들이 남자들에 비해 화장실 이용시간이 기니 당연한 조치이겠지만 남자로서 예전이 그리워지는 것은 사실이다. 내 앞에는 여자들만 죽 서있었다. 기다리다 창문 밖으로 내다보이는 풍경을 바라본다. 한국 시간으로는 밤 10시 40분이겠지만 이곳 유럽은 이제 오후 3시 40분 정도 되었다. 시차가 7시간 정도 나니 말이다. 덕분에 환하다. 뭉게 구름 밑으로 평원이 내려다보인다. 어느새 비행기는 폴란드 상공을 날고 있다. 와보지 못한 땅 폴란드. 바르샤바. 마리 퀴리의 출생지. 요한 바오로 16세 교황의 출생지, 노조 지도자로 대통령까지 지낸 바웬사의 고향 그 정도가 폴란드에 대해 아는 전부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입에 거품이 자꾸 불어나 참기 힘들다는 것이다. 두 화장실 모두 여자들이 들어가 있고, 앞에 서 있는 사람도 여자다. 이 상황에서 남녀공용 문이 먼저 열린다면 앞 여자가 배려심이 강하다면 그 자리는 나에게 양보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입에 거품이 가득 찬 상황이라 말할 수도 없고, 또 내가 먼저 요구할 입장도 아니고 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정말 그런 상황이 벌어졌다. 훨씬 먼저 들어간 여성전용 화장실의 할머니는 나오지 않으시고 남녀공용에서 아가씨가 먼저 나왔다. 내 앞에 있는 아가씨의 선택은 그냥 들어가는 것이었다. 답답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 내 뒤에는 남자들 서넛이 더 서 있었다. 곧이어 여성전용 화장실 문이 열리고 할머니가 나오셨다. 하지만 그림의 떡. 결국 나는 한참 뒤에 서있는 여자를 향해 손짓했고 뜻이 통했는지 그가 앞선 남자들을 제치고 먼저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입에서 거품이 튀어 나오기 전에 화장실 문이 열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또 뭔일. 아까는 분명 없었던 양치도구가 남녀공용에도 떡하니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아까 못찾은 것은 아닐테고. 그렇다면 아까 내가 갔을 때는 다 떨어진 상황이었나보다. 어찌되었든 오랜만에 양치질을 했더니 입이 개운하다. 이제 한시간 반 후면 일차비행이 끝난다. 독일 땅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한다. 그 곳은 몇 년전 유럽여행 때 들른 곳이기도 하다. 여기서 또 그 긴 얘기를 써 내려가야 하는데 그럴 힘이 없다. 역시 내 글쓰기의 한계인가 보다. BMW를 처음 타 보았던 곳, 차로 드라이브 하듯 시내투어를 했던 곳 프랑크푸르트이다. 가이드(?) 때문에 썩 유쾌하지는 않았던 그곳 여행 생각이 잠깐 난다. 환승이기 때문에 바깥을 볼 여유는 없을 것이다. 그 때 만난 그 사람들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없지만 모두들 강건하시길 기원해본다. 안좋았던 추억은 다 떠나보내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