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31일 새벽 3시 16분 (한국 시각 오전 10시 16분) 노르웨이 오슬로 QUALITY HOTEL 477호
춥다! 배고프다.
그렇게 북유럽에 첫발을 내딛었다. 끝내 비행기에서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일행 중 어떤 할머니(아니 아주머니) 말씀을 빌리자면 “물 한잔 안주더구만”이었다. 모두들 그것을 알고 있었나 아무런 얘기가 없다. 분명 일정표 상에는 그렇게 되어 있지 않았는데. 여행 첫날부터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였나? 아니면 괜히 인솔가이드에게 얘기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체면문화 때문에 괜히 그깟 먹는 문제 가지고 왈과왈부 하는 것이 우습게 여겨져서일까? 나 역시 속으로만 생각할 뿐 입을 다문다.
비행기 안에서 우리는 B,C좌석에 앉았다. 먼저 서둘러 탔기에 가장 안쪽 창가 A는 비어 있었다. 어떤 사람이 탈까 궁금했다. 또 좌석 간격이 비좁기 때문에 좌석 주인이 오면 우리가 다 일어나서 통로까지 나와야 하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계속 타는 손님들을 지켜보았다. 뚱뚱한 사람이 지나가면 제발 저 사람은 아닐길 하기도 하고, 우리 앞부터 기웃거리는 사람을 보면 혹시 저 사람일까 해서 엉덩이가 반쯤 들리기도 하고 그렇게 한참 후에 한 젊은 아가씨가 다가와서 씩 웃으며 손으로 안쪽을 가리킨다. 우리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노르웨이 여자일까? 궁금증이 일었지만 물어볼 용기도, 능력도, 상황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끔 곁눈질만했다. 노키아가 핸드폰 회사 1위라고 하더니 노키아 핸드폰을 꺼내든다. 그런데 그 핸드폰이 요즘 우리나라에서 보는 것과 너무 다르다. 요즘 우리나라는 가로본능에 이어서 문지르는 것이 대세인 시대에다가 슬림형 등 핸드폰이 없는 나로서도 눈동냥으로 본 것들이 있는데 그에 비하면 그 아가씨 핸드폰은 몇 년전 전화기 기능만 있던 시절 것이다. 우연이고 일부이겠지만 북유럽인들의 검소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구름이 펼쳐지는 상공을 날자 그 아가씨는 디카를 꺼내 사진을 찍는다. 아마 비행 경험이 그리 많지는 않나보다. 나 역시 구름 사진 찍은 것은 처음 비행기를 탔을 때였다. 그 때의 신비로움이란 지금은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짜릿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비행이 거듭될 수록 구름을 보는 일은 그저 그런 일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이 익숙해진다는 것이 갖는 편리함과 독일 것이다. 사람과의 사랑이든, 일이든, 풍광이든 모든 것들이 처음 낯섬과 설레임에서 익숙함과 편함 그리고 넘어서서 지겨움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사실 어쩌면 상대는 가만히 있는데 혼자 호들갑을 떠는 것이 아닌가 싶다.
처음 몇 번은 비행을 할 때 창가에 앉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창가에 앉아 있으면 화장실을 이용하거나 할 때 많이 불편하다. 옆 좌석에 앉은 사람들에게 수고를 끼쳐야 하기 때문에 맘대로 행동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가급적 통로에 앉으려한다. 특히 몇 년전 토론토까지 12시간이 넘는 비행동안 할아버지, 할머니가 옆에 앉으셨는데 거의 일어서지를 않으셔서 꼼짝없이 자리에 갇혀서 가야 했던 경험 때문에 창가 자리는 더 이상 좋은 자리가 아니었다.
비행기가 오슬로 공항을 향해 하강하기 시작했다. 프랑크푸르트의 하강은 출렁거림이 있어서 공포감이 있었는데 이번 비행기는 조금 더 부드럽게 내려 앉았다. 아까는 날씨도 청명했는데 지금 이곳은 구름이 잔뜩 낀데다 많지는 않지만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훨씬 부드럽게 착지에 성공했다. 상공에서 내려다 본 오슬로의 첫 느낌은 숲이 많은 나라였다.
언제나 그렇듯 사람들은 서둘러 자리에 일어나 짐을 챙기고 내릴 준비를 한다. 그러고보면 심리가 참 이상하다. 다 일어서있으면 짧게는 5분 길게는 10분 여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다 서있다. 왜 그런 것일까? 게다가 어짜피 빨리 내려봐야 짐을 찾는 곳에 가서 또 서 있어야하는데. 그래도 서둘르는 것은 어느 나라 비행기를 타봐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우리 짐을 내리면서 건너편에 있는 짐칸에서 A좌석 아가씨의 짐을 꺼내 내려주었더니 아가씨는 고맙다고 환하게 웃는데 유정이는 과잉친절이라고 기분 나빠한다. 또 내가 착한척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난 그저 도와줄 수 있어서 도와준 것 뿐인데 왜 그걸 기분 나빠하는 것인가? 자신에게는 배려를 제대로 안해주면서 다른 여자에게 배려해주는 것이 이중적이라고 느껴지나보다. 그러나 돌이켜생각해보면 다른 사람들한테 자신이 배려받으면 기쁘면서 자신의 남편이 남을 배려하는 것이 기분 나쁜 것은 모순 아닌가? 뭐라고 변명하기도 그렇고 해서 그냥 예쁜 여자니까 도와줬다고 뻔뻔스럽게 말했다. 도와줄 수 있으면 돕자는 것이 내 생각인데 유정이는 괜히 남들한테 그러지 말란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왜 이리 다를까? 어찌되었든 일순간 분위기가 쌩해졌다.
막상 오슬로 공항에 내렸는데 생각과 좀 달랐다. 한참 백야가 펼쳐질 것을 기대했는데 좀 어둑어둑했다. 비가 와서 인지 날이 매우 춥게 느껴졌다. 서둘러 짐을 찾아 긴 판을 꺼내 입었다. 하지만 반바지는 어쩔 수 없었다. 그 위에다 긴바지를 포개어 입기도 뭐하고 해서 그냥 호텔까지 가기로 했다. 짐을 찾기 위해 서 있는데 네 다섯 살 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꼬마 삼 형제가 자신들이 짐을 찾겠다며 호들갑을 떠는 모습이 참 귀엽다. 똑같이 맞춰입은 티도 귀엽고 또 그 중 제일 맏이는 결국 자기보다 더 큰 가방을 낑낑거리며 회전벨트에서 끌어내렸다. 참 대단하다. 아이들이 귀엽다. 그런 작은 아이들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의자에 앉아있던 유정이에게 아이들을 보라고 손짓했더니 유정이도 웃는다. 나중에 들으니 그 옆에는 비슷한 또래의 흑인 여자 세 자매가 있었다고 한다. 백인 남자 삼형제와 흑연 여자 세 자매가 한 자리에 있는 것이 한 장의 사진이었단다. 난 바로 그 옆에 서 있었는데 그 광경을 볼 수 없었다.
이번 여행은 정말 이상하다. 보통 공항에서 현지 가이드와 미팅이 이뤄지는데 현지 가이드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미리 준비된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한다. 공항에서 5분여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는데 보통 그런 호텔들 수준이 떨어지기에 별 기대 안했는데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호텔인지 아주 깔끔하다. 객실도 공간이 조금 좁기는 했지만 새가구로 잘 정돈되어 있어 기분이 좋았다.
무선 인터넷은 유료인데다 이용해본 적이 한번도 없어서 그림의 떡이다. 프런트에 놓인 인터넷은 무료인 것 같은데 한글지원이 안된다는 문제가 있다. 연결선을 가지고 올까 하다 놓고 온 것이 아쉽다. 늘 그렇다. 갖고 다니면 별 필요가 없고, 놓고 오면 꼭 쓸 일이 생기고 무슨 머피의 법칙도 아니고.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컵라면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객실에 포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쪽팔리기는 하지만, 말이 안되어서 두렵기는 하지만 컵라면을 들고 안내데스크로 내려갔다. 서툰 영어로 물을 달라고 했더니 자기들끼리 뭐라고 한참 얘기하다가 식당에 커피포트를 이용하란다. 겨우 말을 알아듣고 식당에 가서 다시 직원에게 얘기했더니 다행히 친절히 시범까지 보여주며 뜨거운 물을 쓸 수 있도록 해주었다. 덕분에 맛난 컵라면으로 허기를 달래고 이만 닦고 그대로 침대로 뛰어 들었다. 침대 안이 아늑해서 다행이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푹 뒤집어 쓰고 잠을 잤다. 백야가 아니어서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두워서 잠을 청할 수 있으니 다행이다.
그러다 잠을 깬 것이 새벽 3시였다. 왼쪽 다리에 쥐가 나서 소리가 나오는 것을 유정이 놀랄까봐 꾹 참았다. 요즘은 그런 일이 없었는데 정말 고통스럽다. 언제인지 기억은 잘 안나는데 왼쪽 다리 때문에 큰고생을 한 적이 있었다. 침도 맞고 그랬었는데 그 이후 가끔 이렇게 쥐가 와서 왼쪽 종아리가 딱딱하게 굳는 일이 벌어진다. 그 고통이 밀려오는 순간은 마치 몸이 모두 마비가 될 것 같은 공포감에 휩싸이곤 한다. 방법은 없다. 그 물결이 빠져나가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잠시후 평온을 되찾아왔지만 지금도 완전히 물러간 것 같지는 않다. 종아리 부근에서 어슬렁거리는 느낌이 마치 잔변이 남았을 때의 불쾌함과 비슷하다.
밖은 어슴푸레하다. 하긴 백야라는 것이 대낮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리라. 그러니 내가 속았다고 탓할 것이 아니리라. 너무 과잉 기대를 한 내탓이다. 그나저나 아직도 모닝콜까지는 3시간여가 남았는데 다시 잠을 청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다른 작업을 해야 하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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