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2009여름북유럽여행

7월 31일 (목) 오후 2시 4분 오슬로에서 릴레함메르로 가는 차 안

온 독서논술 2009. 8. 22. 21:52

7월 31일 (목) 오후 2시 4분 오슬로에서 릴레함메르로 가는 차 안 (한국시각 오후 9시 4분)

 

아침 8시 30분에 호텔에서 나와 오슬로 관광 일정을 마치고 릴레함메르를 경우하여 오따로 향하는 중이다. 길이 많이 막힌다. 공사 때문인지 차가 많아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행의 피로 때문인지 모두들 잠들었다.

처음 우리가 방문한 곳은 비겔란드 조각 공원이었다. 참으로 멋진 곳이었다. 일생을 바쳐 한가지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는 것도 부럽고, 자신의 발자취를 뚜렷이 새겼다는 점, 많은 이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는 점이 정말 부러웠다. 나 역시 한때 그런 사람이 되길 꿈꿨었는데 지금은 그저 소박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하니 가슴 한켠 마음이 아리다.

비겔란드 조각 공원은 들어서는 입구 부터가 그의 작품이라고 한다. 대문을 조각으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들어서자마자 오른편에 놓인 그의 동상은 그 스스로의 작품이 아니라 제자들의 작품이라고 한다. 십만 여평 규모의 공원을 그가 직접 설계하고 그의 작품으로 채웠다고 한다. 비겔란드 작품에는 일관되게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담겨있다. 사람들이 태어나서, 자라고, 사랑하고, 죽기까지의 과정을 돌을 통해 표현한 것이다. 그런 그의 일생의 노력이 이렇게 한자리에 집대성되어 있다는 것이 놀랍다.

 

유정이와는 계속 농담반 진담반으로 아기들 조각상을 보며 자식을 더 갖기를 기원해보았다. 내 진실된 마음은 무엇일까? 정말 있으면 좋고, 없어도 할 수 없고가 아닐까? 정말 의지가 아닌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생명이라는 생각일까? 자식을 낳아 기른다는 것이 의미있는 일인지 새로운 생명이 이 땅에 있게 함이 의미있는 일인지 헷갈린다.

현지 가이드가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보라고 했는데, 과연 인생은 뭘까? 고등학교 시절 그런 고민이 진짜 깊었는데 그 고민의 자락에서 나이 40이 되도록 한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한 것은 아닐까? 차가 속도를 낸다. 막혔던 길이 이제 뚫린 것이다. 흔들리는 차 속에서 난 연신 노트북을 두드린다.

[끝없는 끝을 향한 끊임없는 전진]을 외쳤던 시절이었다. 인간이 모순된 존재라는 것을 고백하고 그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새로운 모순이 또 생길 수 밖에 없는 우리라는 것이다. 그러하기 그 극복은 결국 하나님의 사랑으로만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 당시 나의 세계관이었고, 종교관이었다. 그런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러하기에 난 인간으로서 주어진 달란트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달란트가 무엇인가에 대해 고등학교 때는 이 세상의 변혁을 꿈꾸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사실 지금도 그리 늦은 것은 아닌데. 나만의 방식이 있을텐데 그런데 나 스스로 솔직해지지 못하는 것이, 나 스스로 욕망을 단절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두 번째로 간 곳은 바이킹 박물관이다.

작은 규모의 박물관이었지만 나름 의의가 있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기에 스칸디나비아 3국은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일 것이다. 왜냐하면 3국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보통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위치한 나라들과 스칸디나비아 3국을 동일시하기 쉽다. 그런데 스칸딘나비아 반도에 위치한 나라는 노르웨이와 스웨덴 두 나라 뿐이다. 핀란드는 반도가 아닌 내륙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덴마크는 스칸디나비아 맞으편 섬에 위치하고 있고 정말 헷갈리는 문제였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읽은 [나의 첫 지도책]에는 스칸디나비아 3국이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3국으로 나와 있어서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사실 그 책이 옳다. 역사적으로, 언어적으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는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있다. 그들 세 나라는 모두 바이킹의 후손이라는 점에서도 같다. 그에 비해 핀란드는 우랄어족이며, 바이킹과는 무관하다고 한다.

그런데 스칸디나비아 3국도 제 나라 지형에 따라 각기 다르게 발전했다고 한다. 산지가 많은 노르웨이, 습지가 많은 덴마크, 그리고 평원이 펼쳐진 스웨덴 각각 자기 나름의 특색을 가지고 살았다고 한다. 노르웨이는 긴 해안을 따라 있어서 각기 흩어져 살았다고 한다. 척박한 땅인지라 주로 해안에 상륙에 마을에서 약탈을 자행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또한 일부는 탐험을 떠나 캐나다 심지어는 미국까지도 진출했다고 한다. 결국 그 얘기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의 첫 발견자가 아니라는 주장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