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2009여름북유럽여행

2009년 7월 31일 17시 21분 릴레함메르 - 오따 구간 버스 안

온 독서논술 2009. 8. 22. 21:53

2009년 7월 31일 17시 21분 릴레함메르 - 오따 구간 버스 안 (한국시각 8월 1일 00시 25분)

 

‘시크릿 가든’이라는 노르웨이 밴드의 잔잔한 음악이 흐른다.

왼편으로는 강인지, 바다인지 잔잔한 물줄기가 흐른다. 물새들이 노니는 모습이 참으로 평화롭니다. 녹색으로 가득찬 세상 오로지 평안한만이 존재하는 듯하다. 지금 이 순간도 어느 곳에서는 생존을 위한 투쟁이, 탐욕으로 인한 약탈과 살육이 존재할텐데. 이 땅 이 순간만은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평화로 가득차있다. 마음이 차분해진다. 머리가 텅 비워지는 느낌이다. 나를 내려놓을 수 있을 듯도 하다. 아 이런 것이 휴식인가? 여태까지 휴식이 뭔지를 모르고 있지 않았나 싶었다. 캐러번을 이끌고 캠핑장을 찾은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들은 저기 왜 저러고 있나 싶었는데 그렇게 일상을 떠나 녹색을 보는 것, 유유히 흐르는 물을 바라보는 것 그 자체가 휴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여백의 미를 강조했던 선조의 깨우침을 이제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뭔가를 그려넣는 일에만 열중하고, 빈 공간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 생각해왔는데 비우는 것 그 자체가 놀라운 창조행위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오전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바이킹 박물관에는 배 3척이 전시되어 있다. 모두들 발굴된 것인데 그것은 바이킹들의 믿음 때문이라고 한다. 마치 우리 조상들이 고인돌을 쌓듯이 때로는 고분을 만들듯이 바이킹의 장례 풍습에 바이킹 전사가 타던 배에 쓰던 물건과 함께 묻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발굴된 배들은 비교적 상태가 온전했는데 그곳에서 함께 나온 썰매와 마차등은 모두 조각나있는 것을 몇 년에 걸쳐 다시 조립을 했다고 하니 사람들의 노력 역시 참으로 대단하다. 그렇게 바이킹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시내 중심부로 와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시청사 외관과 왕궁, 오슬로 대학,

국립극장 외관 등을 주마간산으로 보았다. 노르웨이는 오랫동안 스웨덴의 식민지였다고 한다. 한때는 덴마크의 식민지이기도 했다. 가장 번화한 거리 역시 옛 스웨덴 왕의 이름을 딴 도로이고, 왕궁에 서 있는 기념동상 역시 그 왕을 기린다고 하니 우리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노르웨이 하면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인물이 누구일까? 사실 요즘에는 박노자 교수를 가장 잘 알 것이다. 북유럽을 우리 가까이 소개한 인물일텐니. 역사적으로는 아문센, 난센, 그리그, 입센, 뭉크, 비겔란드 등이 있다고 한다. 사실 이 중에 그들이 노르웨이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노르웨이라는 나라에 대해 사실 알고 있는 것 자체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 더 맞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노르웨이도 내 삶의 일부로 들어왔다. 여행이 갖는 중요한 의미 중 하나가 바로 새로운 만남이다. 그 나라를 직접 몸으로 접함으로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그 나라가 의미있는 존재가 되어 나에게 다가올 것이다.

세금을 5~60%까지 내는 나라, 사회복지가 잘 되어 있는 나라, 한 직장 안에서 소득차가 8배까지 넘지 않도록 하는 나라, 어렸을 적 아이들 공부를 안 시키는데 커서 공부 경쟁력은 가장 뛰어난 나라, 직업간 차별이 심하지 않은 나라 그런 나라가 노르웨이라고 한다. 북해산 브란트유로 대표되는 대표적인 산유국이면서 기름값이 비싼 나라, 전기를 수출할 정도이면서 전기 역시 비싼 나라 노르웨이. 왕을 외국에서 모셔온 나라 노르웨이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안되는 구석이 참 많은 나라이다.

 

노르웨이 차들은 환한 대낮인데도 다 헤드라이트를 켜고 다닌다. 우리나라에서도 전조등을 일찍 켜자는 운동이 한때 펼쳐졌으나 큰 호응을 받지 못했다. 이곳에서는 아예 차가 출시될 때부터 시동을 거는 순간 불이 들어오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이 나라가 겨울철에 해가 서너 시간 밖에 뜨지 않는 특성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세계화의 성공을 위해 현지화가 중요하다고 얘기들 하는데 바로 그런 대목이 아닐까 싶다. 결국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제 삶의 자리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어떤 행동 특성을 보였을 때는 최소한 그 순간 그것이 가장 합리적이었을 것이다. 물론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변해가는데 예전 것들이 따라서 변화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그대로 살아남으려 할 때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혁신을 외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들이 지금 최고의 번영을 누리고 있지만 언젠가는 지금 이 번영이 어쩌면 스스로의 목을 죄는 날도 있을 것이다. 혁신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노르웨일 물가는 정말 비싸다. 우리나라에서 500원할 물 한병이 보통 5000원 정도 한다. 책을 한 권 겨우 샀는데 그 역시 우리나라에서라면 기껏해야 7000원 남짓 할 것인데 2만 5천원 가량했다. 정말 물가가 엄두가 안난다. 그렇다고 여행와서 맥주 한 캔도 못사먹는다면 그것도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그런데 가만히 보니 맥주는 일반 슈퍼에서 팔지 않는 것 같던데. 그렇다면 캐나다처럼 주류전문점에서만 판매하는 것인가? 좀 더 알아봐야겠다.

책을 사러 가는 길에도 한바탕 우여곡절이 있었다. 패키지 성격상 관광지 중심으로 돌아다니니 서점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시간도 늘 촉박해서 서점에서 차분히 책을 고를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이 나라는 6시면 문을 닫는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마침 차가 서점 앞에 정차를 하고 우리가 왕궁 주변을 관광하기로 했다. 그래서 좀 서둘러 관광을 마치고 서점으로 직행했는데 의사소통이 안되어 노르웨이어로 쓰인 노르웨이작가의 그림책을 고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조건인지는 결국 따져보지도 못하고 그 두가지 조건에 맞는 책을 골라 계산을 마치고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눈총이 쏟아지는 듯해서 민망했다. 아침부터 지각아닌 지각의 연속이었다. 아침에는 제 시간에 맞춰 나갔는데 다른 분들이 일찍 탑승하셔서 그만 꼴찌가 되어 버렸다. 그 다음 조각공원에서도 시간을 잘못알고, 게다가 시계도 잘못 맞춰서 당초 약속 시간보다 몇 분 늦어 현지가이드한테 핀잔을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책 산다고 대놓고 몇 분 또 늦었으니 참 죄송하면서도 책 한 권 맘대로 못사나 싶어서 속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단체 생활이니 어찌하랴? 그래도 아쉽다. 차분히 그 나라 서점을 둘러볼 시간을 갖지 못한 것이 말이다. 정말 혼자 여행을 와서 내가 보고 싶은 것만 골라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다. 그렇게 된다면 아마 뭉크의 그림이 전시된 박물관도 꼭 찾았으리라. 그리고 도서관도 방문하고, 서점에서 책도 마음껏 골랐을텐데. 사람 일이라는 것이 모든 것을 만족시킬 수는 없기에 이 정도도 감사 또 감사해야지 어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