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나면 개고생이다.’라는 광고 카피가 한 때 유행을 탄 적이 있다. 분명히 아는 사실인데도 날로 여행객은 늘어만 간다. 여행지에서 겪는 고생은 일단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것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민감한 사람들은 물갈이를 해서 화장실만 자주 들락거려야 할 정도이다. 또한 시차 때문에 낮밤이 바뀐다면 그것도 힘들다. 잠자리가 바뀐 것 자체만으로 편안한 잠을 못 이루는 것도 고생 중 하나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고생은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간판 글씨를 내 맘대로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 힘들다. 그나마 가이드가 있어서 통역을 해주면 낫다. 모르는 글자, 하고 싶은 말 가이드가 나서서 해결해주니 참 다행이다.
그러고 보면 독서도 여행과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를 여행하면 특별히 통역의 도움이 필요 없다. 나 스스로 다 읽을 수 있고,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쉬운 책을 읽는 것과 같다. 자신 스스로 의미 파악을 다할 수 있는 책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좀 더 낯선 풍경, 새로운 볼거리를 동경하기에 해외여행을 가는 것이 아닌가? 우리들 역시 필요에 따라서 때로 어려운 책을 읽어야하지 않나? 그러다보면 글과 말이 낯설어서 당최 이것이 무슨 말인가 알기가 힘들다.
바로 아이들이 책을 읽으며 느끼는 어려움이다. 어떤 이들은 그 어려움이 싫어서 여행 자체를 포기해버리기도 한다. 아이들 독서도 그렇지 않을까? 혼자 읽어서 알아가는 재미를 느끼기도 전에 그 말 자체가 알기 힘드니 그냥 자기가 아는 쉬운 책만 골라 읽으려 하거나, 아예 어려운 책은 덮어버리는 것 아닐까?
그나마 여행은 인솔 가이드도 있고, 통역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떠날 수 있다. 그런데 독서도 그러할까? 독서할 때도 가이드 역할을 해주는 부모님, 선생님이 있다면 아이들 역시 책으로의 여행을 떠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언제까지 옆에서 도와주어야 하나? 사실 여행지에 가서 가이드가 자신 혼자만을 위해 24시간 내내 봉사해주는 경우는 참으로 극소수의 특별한 혜택이다.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일반화된 서비스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아이 역시 누군가가 계속 옆에 서서 도와주고 안내해줄 수는 없다.
여행지에서 결국 자기 맘대로 실컷 여행하고 싶으면 언어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서 제 눈으로 스스로 읽고, 제 입으로 외국인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책도 마찬가지이다. 아이 스스로 의미를 파악해가며 읽을 수 있도록 외국어 배우듯이 책읽기를 배워야한다.
요즘 우리나라는 영어열풍에 휩싸여있다. 나 역시 뒤늦게 영어를 다시 공부해보겠다고 이어폰을 꽂고 다니며 영어를 듣지만 쉽지 않다. 그래도 어쩌랴? 자꾸 들어야 귀가 뚫린다는데. 책도 마찬가지이다. 자꾸 읽어야 눈이 트이는 것이다. 결국 수학에만 왕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외국어 공부에도, 독서에도 왕도는 없는 것이 아닐까? 그저 부지런히 배우고 익힐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물론 왕도는 없지만 지름길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한방에 끝내주는 기막힌 비법은 없지만 외국어를 잘 익힐 수 있는 나름의 노하우가 있듯이 독서 능력을 신장시킬 수 있는 방법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노하우라는 것이 사실 제각각이라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결국은 자신에게 맞을 때 그것이 비법이 될 수 있는 것이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이라면 거추장스런 존재가 될 뿐이다.
외국어도 결국 언어이기에 어휘를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단어 시험도 보고, 심지어 어떤 이는 사전을 통째로 외우려 들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독서에서도 어휘를 많이 알아야 쉽게 책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어휘라는 것이 묘하게도 사전을 찾아가며 하나 하나 익히는 방법도 있지만 생활 속에서, 영어를 접하는 가운데서 스스로 파생되는 것도 많다.
마찬가지로 독서를 하다보면 저절로 그 단어를 익히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은 계속 어휘가 늘어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게 되고 결국 더 많은 어휘를 알게 되는 선순환이 지속된다.
반대의 경우는 어휘가 딸려서 독서를 멀리하고, 그러다보면 어휘는 정체를 일으켜 결국 또 다른 독서를 막는 악순환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일부러 개입해서 초기에 아이의 어휘를 늘려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통역관이 중간에서 설명해주어 의미를 연결해주듯이 우리 아이에게도 혹시 독서통역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물론 명심해야할 일은 자신의 평생 아이를 따라다니며 독서통역을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하기에 지금 당장은 독서통역을 통해 아이를 도와주지만 결국 아이 스스로 독서를 통해 의미를 획득할 수 있도록 아이를 격려하고, 자극해야 한다.
비록 음식고생, 잠자리 고생, 언어고생이긴 하지만 여행은 새로운 만남이 있어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독서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읽는 동안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그 과정을 극복하면 자신의 영혼을 살찌울 수 있다. 여행을 통해, 독서를 통해 삶이 보다 아름다워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