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칼럼

만화와 독서

온 독서논술 2011. 5. 2. 10:33

고등학생 시절 일입니다. 야간자율학습이라는 말과는 달리 젊은 청춘들은 강제적으로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억지로 잡혀 있었으니 오죽이나 시간이 안 갔겠습니까? 특히 좀 노는 친구들은 그 시간이 더욱 힘들었겠지요. 그래서 그 친구들이 만화책을 빌려다가 보곤 했지요. 저 역시 우연히 그 친구들의 만화를 보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박봉성 화백의 ‘신의 아들’이었습니다. 어찌나 재미있던지 야간자율학습 시간이 금세 가더군요. 그게 꽤 긴 시리즈인데 그만 한 친구가 감독 선생님께 딱 걸리는 바람에 그 만화책을 다 몰수당했습니다. 결국 저는 끝까지 다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처음으로 만화방을 찾았고 그 때부터 한 두세 달 동안을 부모님을 속여가며 만화방 출입을 했습니다. 그때 주로 열심히 읽었던 만화들이 박봉성, 이현세 등 당대의 유명한 작가들 작품이었습니다. 전 그 만화에서 인생을 배웠고, 내가 이룰 수 없는 낯선 세계에 대한 무한동경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만화에는 삶이 있었고, 꿈과 정의가 살아 꿈틀거렸습니다.

  하지만 그런 만화 속 세상과 달리 현실에서 만화는 늘 ‘공부의 적’으로 천덕꾸러기 신세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 만화가 공부와 친구가 되어 ‘학습만화’라는 이름으로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른바 재미와 교양 두 마리 토끼잡기에 성공을 한 셈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열풍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과연 ‘학습만화’가 효과적인가? 바람직한가? 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만화이건, 일반책이건, 영화이건 어느 매체나 그 나름의 장단점이 있을 것입니다. 그 장단점을 정확히 알고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입니다. 또한 사람은 모두 같지 않고 각각 다르기 때문에 어떤 매체와 어떤 사람이 만나느냐에 따라 여러 조합이 가능하기 때문에 함부로 일반화시키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전 가능하다면 아이들이 순수만화를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것은 놀이로서, 문학작품으로서 독서의 기능을 온전히 잘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쉽게 만화를 읽으며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지며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지요. 공부 시간 끝나고 쉬는 시간이 있어야 하듯이 그렇게 쉬는 것으로, 또 좋은 영화 한 편을 보며 감동하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듯이 그렇게 만화는 삶의 위안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TV예능만 보고 시시덕거리고 있을 만큼 인생이 한가하지 않다는 문제점이 있지요. 또 한 번 빠져들기 시작하면 생활리듬을 깰 수 있기에 자기절제력을 갖지 않는 한 큰 어려움에 부딪칠 수 있다는 문제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역시 함께 고려되어야 할 점입니다.

  학습만화를 보는 것에 대해서는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부모의 기대와 아이의 기대가 서로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학습만화라도 보는 게 낫지 않냐 라는 막연한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는 다른 책 보는 것보다 덜 지겹고, 다른 공부하는 것보다 낫고, 부모도 원하니 적당히 타협하는 것은 아닐까요? 

  학습만화가 효과를 발휘하는 순간은 만화의 장점을 잘 살렸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즉 어려운 내용을 만화로 표현했을 때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면 그 장점을 충분히 살린 것입니다. 또한 흥미를 자극해서 쉽게 접근하기 힘든 사실에 다가설 수 있다면 그 역시 좋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통해 잃는 것은 무엇일까요? 기회비용으로 지불되는 것이 무엇인지도 한 번 따져봐야 합니다. 아무래도 만화에 자꾸 길들여지다 보면 긴 글을 읽는 습관을 갖기 어렵고, 그런 책을 보는 독해능력의 향상 역시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아이가 부모의 기대처럼 학습만화의 내용에 충실한 것이 아니라 자극적인 말풍선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큰 효과를 얻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학습만화를 볼 때 첫째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과연 그 만화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 우리 아이에게 지금 꼭 필요한 내용인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굳이 지금이 아니어도 좋다면 학습만화를 권할 이유도 없을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아이들이 또 하나의 즐거움과 기쁨으로, 삶의 쉼표로 만화를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수준 높은 만화를 통해서 감동을 느끼고 삶이 변화될 수만 있다면 정말 황홀할 것입니다.

  학습만화의 경우 이런 내용을 지금 아이에게 읽게 하는 것이 욕심인지 아닌지를 검토해보고, 과연 그 학습만화가 내용을 만화 속에 잘 녹여내었는지 아니면 그저 만화의 형식만 대충 빌려 왔는지를 잘 검토해보자는 것입니다. 만화는 만화일 뿐입니다. 만화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만화를 어떻게 이용하느냐가 더 문제일 것입니다. 만화가 좋다, 나쁘다의 이분법적 접근이 아니라 여러 매체 중의 하나로서 선택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 스스로가 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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