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탄생
“참 그러네.”
“뭐가?”
“이 나뭇잎들 말이야. 저 멀리 보이는 가을산은 참 예쁜데, 이렇게 가까이 보면 쓸쓸하니 말이야.”
“어, 그러네. 정말 그런걸.”
늦가을 어느 날 충북 영동의 천태산 자락을 거닐던 아내가 툭 내뱉은 말들로 인해 난생 처음 시를 써보게 되었습니다. 전 평소 시는 직관적 통찰력을 지닌 시인들만이 쓸 수 있는 전유물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래서 그런 인생에 대한 통찰력이 없는 저로서는 엄두를 낼 수 없었습니다. 또한 시인은 각고의 노력으로 언어를 갈고 닦아 완성도 높은 시어를 탄생시키는 존재들이기에 차마 시를 쓸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시를 쓸 자신이 없어서 시 창작을 가르칠 시도도 해본 적이 결코 없었습니다. 그랬던 제가 아내 덕분에, 장난 비슷하게 시를 처음 지어보게 되었습니다.
시는 이처럼 일상의 소소한 깨달음을 붙잡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남들과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기가 시 창작의 첫걸음입니다. 시 뿐만 아니라 모든 글짓기의 첫 단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깨달음이 있다고 바로 시가 탄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디어를 결국 어떤 시어에 담아 표현해낼 것인가라는 또 다른 산을 넘어야 합니다. 우리는 첫 시도인지라 이전 시인이 만들어 놓은 형식에 묻어가기로 했습니다. 그 때 떠오른 시가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었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우선 이렇게 써 보았습니다.
멀리서 보아야
이쁘다
가까이서 보면
안타깝다
그런데 아내가 거기에 ‘가족도 그렇다’를 덧붙이자는 주장을 했습니다. 전 그게 무슨 말일까 처음에는 선뜻 동의하지 못했습니다. 충분히 논란이 있을 법한 얘기입니다. 가족주의가 그 어느 곳보다 강한 우리 정서 속에서 과연 가족도 진짜 멀리서 보아야 이쁜 것인지 그런 생각이 사람들에게 일반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처럼 시에는 시인 나름의 세상을 보는 눈을 담고 있습니다. 결국 좋은 시란 평소 시인의 삶 철학이 올바를 때 자연스럽게 우러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내는 아마 중국에 가 있는 큰 아이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집에 함께 있을 때는 이것저것 잔소리 할 것 밖에 보이지 않아 더 많이 사랑해주지 못했는데 집 떠나 멀리 가 있으니 그저 함께 했던 좋은 추억만 떠오르고, 더 잘 못해준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기에 그런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가족이라는 존재가 늘 가까이서 아웅다웅할 때는 그 존재의 귀함을 잘 모르다가 한걸음 떨어져 있어보면 진한 그리움으로 느껴지니 ‘가족도 그렇다’라는 말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은 ‘멀리서’와 ‘가까이서’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대신 ‘멀리’와 ‘가까이’로 표현하는 것이 더 나을 듯 했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퇴고를 했습니다. 퇴고란 당나라 시인 가도가 시가 떠올랐는데 ‘퇴’가 나을지 ‘고’가 나을지 한참을 고민했다는 얘기에서 나온 고사성어로 문장을 다듬고 어휘를 살피는 것을 뜻합니다. 결국 시적 운율을 고려할 때 ‘멀리’와 ‘가까이’로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을 작성하기 위해 쓰다 보니 ‘이쁘다’가 ‘예쁘다’의 방언 또는 잘못된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고민 중입니다. 어법을 따를 것인지 시적 허용이라고 그냥 표준어 규정을 무시할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처럼 시는 한 번 썼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 자꾸 갈고 닦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각고의 노력 끝에 한 편의 시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종(?) 완성된 시입니다.
늦가을 산에서
정유정&이선배
멀리 보아야
예쁘다.
가까이 보면
안타깝다.
가족도 그렇다.
사실 아직도 제목이 썩 맘에 내키지 않습니다. 늦가을 산 떨어지기 직전의 나뭇잎을 보고 쓴 시인데 그 나뭇잎이 낙엽은 아직 아니고, 그렇다고 단풍은 가까이 보아도 예쁘니, 적절하게 표현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아쉽습니다.
어쨌든 뜻하지 않게 아내 덕분에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비록 나태주 시인이 만들어 놓은 그릇에 무임승차하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고 또한 동시에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 또 다른 시를 만나러 세상을 두리번거리고, 올바른 생각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언젠가 자신 있게 아이들과 시를 함께 쓸 수 있는 날을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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