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밴드,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조문 예절’에 관한 글이 퍼지고 있습니다. 그 글을 읽으면서 드는 첫 번째 생각은 ‘아, 그렇구나. 새로운 것을 하나 배웠네.’였습니다. 그러다가 슬그머니 드는 생각이 ‘그런데 이거 진짜야? 근거 있는 얘기야? 누가 이런 예절은 정하는 거지?’였습니다. 그래서 글을 조금 더 꼼꼼히 따져보게 되었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더 알아보았습니다. 그 결과 이 글은 2010년 무렵부터 퍼지기 시작한 ‘도시전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그럴 듯하지만 명확하게 증명되지 않고 떠도는 얘기라는 것입니다.
그 글의 주장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를 쓸 때 마침표(온점)를 찍지 말아야 하고, 띄어쓰기도 하면 안 되고, 삼가를 붙이려면 그 앞에 이름을 붙여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육신은 죽었지만 영혼은 아직 진행형으로 저세상으로 가야한다고 믿는 마음에서 마침표를 찍지 않습니다.]라는 그럴듯한 근거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다만 띄어 쓰지 않는 이유 또는 삼가 앞에 이름을 붙여야 하는 부분에 대한 설명은 특별히 없이 [점을 붙이면 그 가족까지 전부 죽어라 라는 뜻이 되지요.]라는 식의 협박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논란이 일자 대한민국 최대 상조 기업인 ‘보람그룹’에 이에 관한 문의가 있었고 ‘보람그룹’은 다시 국립국어원 등에 문의를 통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가 문제없는 표현임을 확인해주었습니다.
이 논란을 지켜보면서 비판적 글읽기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합니다. 독서교육이란 흔히 텍스트를 잘 해석해내는 능력을 뜻합니다. 즉 글을 통해 저자가 하려는 얘기가 무엇인지를 잘 읽어낼 수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지요. 그런데 그것은 좁은 개념의 독서교육입니다.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독서교육이라는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뛰어넘어 텍스트 그 자체가 신뢰할만한지 비판적 검토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 늘 아이들에게 주장합니다. ‘책을 머리 위에 두지 말고, 발밑에 둬야 한다.’ 이 말의 뜻은 책은 절대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책은 단지 저자의 주장을 담고 있을 뿐이고 그 주장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고는 자기 자신이 결정할 문제라는 뜻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오늘날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도 현재의 진실이지 장차 다른 과학적 근거가 밝혀진다면 진실이 아닌 거짓으로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역으로 생각해보면 프톨레마이오스가 천동설을 주장한 것이 지금으로서는 터무니없는 얘기이지만 그 당시 프톨레마이오스가 가진 과학적 근거로는 그것이 진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실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텍스트를 읽을 때 과연 그 출처가 어디인지? 합리적인 근거는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 다른 여타의 사실과 충돌하는 지점은 없는지? 이런 부분을 따져보고 최소한 현재의 진실로 인정할지 아닐지는 판단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이 수용하더라도 그것은 현재의 진실일 뿐이라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즉 더 나은 근거를 갖춘 주장이 제시된다면 기꺼이 자신의 믿음을 버릴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또한 더 나아가서는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들에 대해 늘 의심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럴 때 인류 사회는 진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역시 모순이 발생합니다.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진실이 필요합니다. 세상 모든 것을 불완전하고, 불확정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현재 딛고 설 발판이 사라지게 됩니다. 반면 그렇다고 너무도 확고하게 현재의 진실을 신뢰한다면 그것이 굳어져서 새로운 생각이 움트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우리는 열린 진실을 마음에 품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아이들이 그런 태도를 가지고 텍스트를 볼 수 있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부터 그런 자세로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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