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첫째 아이는 요즘 애완동물에 미쳐 삽니다. 처음 햄스터 한 쌍만으로 시작했던 것이 구피로 잉꼬로 점점 영역을 확대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고슴도치를 키우겠다고 만날 귀찮게 합니다.
사실 전 애완동물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수족관에서 키우는 물고기 정도까지는 봐줄만 하지만 내 곁에 다가오는 동물들은 겁이 나서 싫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등쌀에 어쩔 수 없이 허락해주곤 합니다. 물론 아이 방 밖으로 절대 애완동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습니다.
아이는 도서관에 가서도 애완동물에 관한 책을 열심히 찾아 읽습니다. 웹서핑도 주로 애완동물에 대해서 합니다. 대전에 살고 있는데 서울 청계천에 애완동물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서울 외가에 갔을 때 외할아버지를 졸라 그곳에 구경 가서 사진을 찍고, 또 직접 물고기를 사오기도 했습니다.
아빠인 제가 읽었으면 하는 책은 시간이 없다, 어렵다며 요리조리 핑계를 대지만 제가 읽고 싶은 애완동물 책은 국내에는 좋은 것이 없다며 아마존을 통해 외국책을 사서 읽겠다고 나서는 형편입니다.
아이 이야기를 길게 하는 까닭은 결국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옆에서 이것이 좋으니 해라해도 그것은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만큼 효과가 없다는 뜻이지요.
산업화 시대이후 분업화, 전문화가 본격화 되면서 삶이 조각조각 나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 일을 도대체 왜 해야 하는가 알지도 못한 채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을 반복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쉽게 예를 들면 예전에는 음식을 만들면 한 사람이 뭘 만들 것인지 고민하는 일부터, 재료를 구하고, 음식을 만들고, 나누어 먹는 일까지 전과정에 관여해서 수고와 보람을 함께 얻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무슨 음식을 만들지 고민하는 사람 따로, 음식 재료 구입하는 사람 따로, 만드는 사람 따로, 서빙하는 사람 따로 다 따로 따로 일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전문화로 이뤄져 효율적인 생산을 가능하게 한 이점이 있는 반면 그렇게 분업화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이 하는 일에서 직접적인 기쁨을 맛보기는 어려운 지경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는 도제교육이라고 해서 사실 따라다니며, 직접 일하며, 어깨너머로 배웠기 때문에 그것 자체가 갖는 중요성을 저절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학교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일과 공부가 나뉘어서 나중에 필요하니까 배워둔다는 식으로 되어 버렸습니다.
아이들에게 참 그것은 뜬구름 잡는 얘기일 수 밖에 없습니다. 나중에 필요하니까, 중요한 것이니까 배워둬야 한다. 읽어야 한다라는 식의 접근은 동기유발이라는 측면에서 치명적인 문제를 갖을 수 밖에 없습니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행복해지기 위해 어린아이에게 더 기다리라고, 노인에게 이미 지나갔다고, 노예나 매춘부에게 포기하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누구나 지금 그 자리에서 함께 행복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에피쿠로스의 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행복해지기 위해 어린아이에게 더 기다리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자리에서 행복해야 한다.”입니다. 독서도 마찬가지이어야 할 것입니다. 아이들이 나중 행복을 위해서 지금을 준비하는 것도 의미있겠지만 지금 이 순간 행복한 독서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이 자연스럽게 나중의 행복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면 가장 좋지 않을까요?
이렇게 말하면 당장 엄청난 반발에 부딪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아이는 책 읽는 것을 행복해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또한 만날 만화책만 보기를 원한다고 문제를 제기할 것입니다.
그래서 어렵습니다. 사실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뭐라 대답할 뾰족한 수를 찾기도 어렵습니다. 그저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아이의 관심을 살펴서 그 관심으로부터 독서가 출발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애완동물에 미처 사는 아이에게는 애완동물에 관한 책을 많이 읽게 하는 것으로 출발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분야를 집중해서 보다보면 결국 세상일이라는 것이 기본 원리는 통하기에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저절로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또한 세상 일이라는 것이 서로 복잡하게 연계되어 있기에 한 분야를 집중해서 파다보면 분명 다른 분야로 관심이 확대될 수 밖에 없을 것이기에 굳이 음식을 골고루 먹듯이 책도 이 책 저 책 골고루 봐야 한다는 논리에 사로잡히지 말고 아이가 관심 있는 분야로부터 출발할 수 있도록 부모가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지금 행복한 독서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행복해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부모 역시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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