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칼럼

잘 베껴 쓰자!

온 독서논술 2009. 10. 29. 12:13

잘 베껴 쓰자!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에] 등으로 유명한 빈센트 반 고호 그는 천재화가였을까? 그의 그림 중 '가셰 박사의 초상'은 1990년 5월 15일에 크리스티즈에서 8,250만 달러(한국돈으로 약 580억원)에 팔려 당시 최고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다 고호 사후의 일이다. 살아생전에 그는 전혀 주목받지 못한 가난한 화가였다. 동생 테오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없었다면 반 고호도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또한 28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들어서야 본격적인 화가의 길에 들어선다. 그는 1880년에 헤이그에서 ‘안톤 모브’로부터 짧은 기간 동안 그림 수업을 받았다. 그 후 1885년과 1886년 사이의 겨울에 벨기에에 있는 안트베르펀의 미술 학교에 등록했지만 몇 달 후 외젠 시베르트 교수에 의해 퇴학당했다. 이처럼 정규 교육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가 어떻게 오늘날 최고의 화가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

 

[낮잠 - 밀레의 작품]

[낮잠 - 고호의 작품]

 

그의 성공 비결 중 하나는 바로 ‘베껴 그리기’이다. 고흐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1880년부터 밀레의 판화 및 사진을 보고 데생의 기초를 다졌다. 그래서 고흐의 그림에서 밀레가 느껴진다고 한다.

어디 '베껴 그리기‘가 고흐뿐이겠는가?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손꼽히는 피카소는 아예 "훌륭한 예술가는 남의 작품을 베끼지만, 위대한 예술가는 훔쳐 온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어떤 미술평론가는 피카소의 성공의 요인을 ‘다른 사람 그림을 베끼는데 주저함이 없었다는 것’을 손꼽는다. 피카소는 좋은 그림을 보면 일단 그대로 베껴 보았다고 한다. 물론 거기서 그치지 않았기에 그가 천재화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스타일을 발달시켜 자신의 그림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예로 <아비뇽의 처녀들>을 들 수 있는데 이 그림은 조르쥬 브라크(Georges Braque)로부터 큐비즘 스타일을 '훔쳐'온 것이라는 것이다. 브라크가 친구의 문병을 갔다가 창문 밖으로 보이는 에펠탑을 조각조각 해체시켜 블록 모양으로 그림을 그린 적이 있다고 한다. 그것을 본 피카소는 이 큐비즘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따와서 자신의 그림에 응용했던 것이다.

이것은 화가들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인간과 자연에 관한 한 편의 거대한 서사시!’라는 평가를 받는 [모비딕]을 쓴 허먼 멜빌은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무려 250번이나 베껴 썼다고 한다.

 

[풍경이 있던 자리], [외딴방] 등의 소설로 유명한 신경숙 역시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컨베이어벨트 아래 소설을 펼쳐 놓고 보면서, 좋아하는 작품들을 첫 장부터 끝장까지 모조리 베껴 쓰는 문학수업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소설가 신경숙은 또한 오빠가 사준 삼성출판사 한국문학전집 100권을 모조리 읽어 내리면서 방학 때마다 소설 베껴 쓰기에 푹 빠지곤 했다고 한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의 학교에서는 '이미테이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베껴 쓰기’는 참으로 좋은 글쓰기 훈련 방법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베껴 쓰기’는 어떤 점이 좋을까?

우선 눈으로 읽는 것보다 보다 글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잘 쓴 글을 베껴 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작가의 사고력, 구성력, 표현력 등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더 나아가 자신만의 문장표현을 형성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이외에도 끈기를 기를 수 있다는 것이 빼놓을 수 없는 점이다. 사실 이것은 모순이다. 끈기, 집중력이 있어야 글을 베껴 쓸 수 있다. 그런데 반대로 글을 베껴 쓰는 과정에서 끈기가 길러지는 것이다.

아이들이 글을 쓸 때 가장 어려워하는 점 중에 하나가 바로 가만히 앉아서 글을 써낼 끈기가 없다는 점이다. 또 연필을 잡고 한 바닥을 넉넉히 써 내려갈 손힘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베껴 쓰기 연습을 통해서 그런 능력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베껴 쓰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첫 시작은 책에서 좋은 문장을 발견했을 때 그 문장을 그대로 옮겨 쓰는 일부터 시작할 수 있다. 또는 동시와 같은 짧은 글 중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정성스럽게 베껴 쓰는 것도 좋다. 동기 부여를 위해서 자신이 손으로 직접 쓴 책 한 권을 만들어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시작을 했으면 그 다음에는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칼럼이나 짤막한 동화를 한 편 골라서 그대로 베껴 쓰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빨리 베껴 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베껴 쓰기가 왜 중요한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한 과정이 진행되었다면 이제 책을 보고 베껴 쓰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고 난 후 그 내용을 베껴 써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똑같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 똑같은 글을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써본다는 것이 의미가 있다. 이 과정에서 원작의 표현과 자신의 표현을 비교해보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꾸준히 하는 과정에서 어느덧 자신의 글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늘 글을 짧게 쓰던 아이가 글을 자신 있게 충분히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세상 일이 어디 공짜가 있을까? 이런 과정을 겪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 대하소설로 유명한 조정래 선생은 아들, 며느리에게도 소설 '태백산맥'을 필사시키며 이런 말을 했던 것이다.

“하루에 한 시간씩 투자하면 4년이면 다 할 수 있는 일인데 사소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노력을 꾸준히 바침으로써 큰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아들과 며느리에게 체험시키고 싶었습니다. 꾸준한 끈기 있는 노력이 얼마나 삶의 소중한 자산이고 삶을 개척해 나가는 수단이고 방법인가를 가르쳐 주고 싶었던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