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제 카카오스토리에 올라온 사진 두 장이 유독 제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제 마음까지도 흐뭇하게 합니다. 흐뭇함을 넘어 부러움으로 가득 찹니다. 그러다 생각을 하게 합니다.
사연은 간단합니다. 유치원(?) 꼬마 숙녀가 자신도 좋아하는 과자를 아빠에게 나눠주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아빠가 자신이 잠든 후에 돌아올 것 같아서, 삐뚤빼뚤 글씨를 써서 과자 한 봉지와 함
께 현관에 붙어 놓은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읽고 무슨 맘이 드셨나요? 전 처음에 “와~ 부럽다.”였습니다. 그래서 댓글도 ‘저도 딸이 둘이나 있는데 왜 같은 딸 다른 행동이지요?’라고 남겼습니다. 그러다가 그게 딸의 문제가 아니라 제 문제 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빠가 어떻게 하였기에 그만큼 딸의 사랑을 받나요? 배워야겠습니다.’를 덧붙였습니다. 아마 우리 딸들도 어렸을 때 절 감동시키는 기특한 짓 많이 했을 텐데 제가 기억력이 안 좋아서 잊은 것 아닐까요? 그리고 지금도 표현은 안하는 것 일뿐 마음속으로는 절 좋아하고 있을 거라 애써 생각해봅니다.
딸 없는 분들 염장 지르려고 이 글을 쓰는 것 절대 아닙니다. 사실 딸만 이런 예쁜 짓 하는 것 아닙니다. 애인 사이에도, 부부 사이에도, 친구 사이에도, 동료 사이에도 이런 감동을 안겨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주목하는 것은 그렇게 남을 감동시키는 마음에 대해서입니다.
이 사연의 주인공 집도 딸이 셋입니다. 그런데 유독 이번 사연의 주인공 둘째가 아빠를 잘 따르고 챙긴다고 합니다. 그러니 자신이 좋아하는 과자를 기꺼이 아빠 드시라고 내줄 수 있는 것이겠지요. 바로 그 마음이 어떻게 생기는지 전 궁금합니다. 자신의 소중한 것을 기꺼이 내주고도 행복한 그 마음. 바로 그것이 사랑이겠지요.
똑같은 상황에서 누군가에게는 그 마음이 샘솟는데 또 다른 이는 그저 자기 입에 가져갈 생각을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사람마다 남을 사랑하는 마음의 그릇이 제각각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마음 속 사랑의 그릇은 얼마만한가요?
그런데 그 사랑의 그릇이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한결 같이 작동하지는 않습니다. 아마 그 꼬마도 자기가 사랑하는 아빠이기에 그런 마음을 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자신의 소중한 과자를 내어놓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해서 내어주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것일까요? 아니면 일부러 학습 가능한 것일까요? 오늘날 공산주의는 실패한 이론이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 실패의 요인이 다양할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손꼽는 것은 바로 사람의 마음에 관한 것입니다.
제가 이해하는 공산주의는 사랑입니다. 제 능력껏 열심히 일해서 얻은 성과를 필요한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 가져다 쓸 수 있는 이상사회인 공산주의를 지탱하려면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기가 애써 일해 얻은 성과를 남이 가져다 쓰는 걸 지켜보고 있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남의 것을 뺏어서라도 내 것으로 만드는 절대경쟁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 눈에 공산주의는 잠꼬대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가족이 공산주의입니다. 가족 구성원은 제각각 능력만큼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옵니다. 그런데 자신이 번만큼 쓰지 않습니다. 가족 중 필요한 사람들이 그 돈을 가져다 씁니다. 그래도 벌어온 사람들은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흐뭇해합니다. 이미 가족들은 공산주의로 살고 있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가족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여간해서는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서기 어렵습니다. 가족애가 강하면 강할수록 더 넘어서기 힘들겠지요? 그래서 저 같은 사람은 한때 가족의 해체를 주장했습니다. 가족이 사적소유의 근본이고, 상속할 수 있기에 자꾸 쓰지도 않으면서 재산을 쌓아 놓느라 정작 당장 굶주린 사람들에게 그 곡식이 돌아가지 않으니 상속할 가족이 없으면 재산을 축척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그 식량이 배고픈 이들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논리전개였습니다.
마치 애굽을 탈출해 광야를 떠돌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왔는데 그 만나는 일용할 양식이어서 보관할 수 없어서 더 많이 받으려고 애쓰는 이 없이 골고루 나눠먹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가족을 없앤다고 과연 그런 이상사회가 가능할까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가족 자체의 문제가 아니고 가족애가 더 큰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 그래서 공산주의에서는 이른반 사상교육을 통해서 의도적으로 사랑을 심어주려 했습니다. 개개인보다 공동체성을 강조하고, 헌신해야할 이유를 주입했지만 결과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입니다. 모르겠습니다. 다른 실패의 요인이 컸기에 아직도 공산주의 이상에 대한 꿈꾸기는 계속되어야 하는 것인지도 말입니다.
얘기가 길어졌습니다. 결국 전 궁금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어떻게 생겨나는지? 학습될 수 있는 것인지? 사랑이 충만한 사회를 만들자고, 서로 사랑하라고 말하는데 그게 과연 가능하기는 한 것인지? 그렇게 하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누가 속 시원히 대답 좀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사랑하는 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소중한 것을 내어놓을 수 있는 하루를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이가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에게 다 내어줄 수 있을 만큼 과자도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과자 살 돈 벌기위해 또 열심히 하루를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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