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아카시아 선물
길가에 보랏빛 도라지꽃, 하얀 꽃이 활짝 웃습니다.
그 길 따라 아빠와 아이의 발자국도 가뿐 가뿐.
숲 속 작은 길 따라 칠월의 진한 녹색향이 아빠와 아이를 포근히 품습니다.
매암 매암 매미 소리 높아만 가고, 쪼르륵 쪼르륵 청솔모의 발놀림도 빨라만 갑니다.
뒤따르던 아빠의 눈이 아카시아 나무 앞에 멈춰 섭니다.
“한들아! 너 이게 뭔 줄 아니?” 어느새 아빠 손에는 아카시아 잎이 들려 있습니다.
청솔모 좇아, 나비 따라 정신없이 뛰놀던 아이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입니다. 아빠 머릿속에는 어릴 적 친구와 놀던 생각이 자꾸 자꾸 피어올라 파란 하늘 하얀 뭉게구름이 됩니다.
“아빠랑! 가위 바위 보 해서 이파리 떼기 놀이할래?”
아이 손에도 금세 아카시아 잎이 하나 들립니다.
“가위 바위 보!”
아빠 손은 활짝 펼쳐지고, 아이의 작은 손은 단단히 움켜졌습니다. 아이의 입은 한 치 쑥 나오고, 아빠의 얼굴에는 한 뼘 웃음이 번집니다.
“가위 바위 보!”
이번에도 아빠가 보를 내어 아이의 주먹을 감쌉니다.
아이의 입이 댓발이나 나오려 합니다.
이러다가 아이가 삐질까봐 아빠는 슬그머니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아빠는 또 보자기를 펼쳐야지 맘먹습니다.
“가위 바위 보!”
아, 그런데 아이는 또 주먹을 냅니다.
자꾸만 일그러지는 아이 표정이 아빠 맘을 애타게 합니다.
뭘 내지 고민하던 아빠는 아이의 눈에 소망을 담아 보냅니다.
세상의 아버지들이 그러하듯 딸이 이겨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아카시아 꽃말처럼 비밀스런 사랑을 보내봅니다.
아이는 알았는지 몰랐는지 다시 한번
“가위 바위 보!”
드디어 아이는 제 아카시아 잎 한 장을 떼어냅니다.
“야호!” 하는 힘찬 소리가 숲을 메아리칩니다.
아빠 마음 속 무거운 돌덩이도 덩달아 치워집니다.
아빠의 비밀스런 사랑을 이제야 아이가 알았나봅니다.
“가위 바위 보!”
아빠는 계속 보만 냅니다.
그런데 아이는 또 다시 주먹을 냅니다.
아빠는 갸우뚱 이상합니다.
이제 아빠의 아카시아는 이파리가 몇 개 남지 않았습니다.
아빠 마음은 급해집니다.
그렇다고 지금 다른 것을 내자니 오히려 아이가 더 질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빠는 계속 보만 냅니다.
아이는 가위를 내어 보자기를 싹둑 싹둑 자르기도 하지만, 주먹을 내어 자꾸 지기도 합니다.
아빠 아카시아 잎도 자꾸 떨어져 나가고, 아이 잎도 하나 둘 살랑 살랑 길가에 뿌려집니다.
아빠 이파리 한 장, 아이 이파리 세 장.
“가위 바위 보!”
아빠는 여전히 손을 활짝 펼칩니다.
마침내 아쉬운 아이의 한숨 소리가 아빠 맘을 아프게 합니다.
아빠는 슬그머니 화가 납니다.
일부러 보자기만 냈는데 그것도 모르고 제대로 이기지 못하는 딸이 못내 야속합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심통 난 딸은 온데간데없고 딸은 환히 웃고 있습니다.
딸의 웃음이 아빠 마음을 녹이고, 아빠 얼굴로 옮아갑니다.
아빠와 딸은 산길 따라 발을 부지런히 놀립니다.
숲이 깊어감에 따라 아빠와 딸의 도란도란 이야기도, 비밀스런 사랑도 깊어만 갑니다.
아빠는 까마득히 몰랐습니다.
아이가 주먹 한 번, 가위 한 번 번갈아가며 내었다는 것을.
아이는 아빠의 비밀스런 사랑을 이미 다 알고 있었습니다.
늘 아이가 끝에는 이기게 해주는 그 아빠의 비밀스런 사랑을.
이제 아이는 그 비밀스런 사랑을 아빠에게 되돌려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빠 몰래 주먹 한 번, 가위 한 번.
어릴 적 아빠의 추억이 다시 아이의 추억이 되어, 사랑이 되어 칠월 햇살만큼이나 환히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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