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게 된 동기’ 꼭 써야 하나?
소설가 이만교선생님이 쓴 [글쓰기 공작소/그린비]에 소개된 인도 우화를 간추려 보았다.
인도의 한 마을 사람들이 모여 신에게 찬양과 기도를 올리기로 하였다. 하지만 예배를 이끌만한 사람이 없어서 산속에서 수도하던 ‘구루’를 모셔다가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도둑고양이가 예배 시간 내내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심하게 울어대어 신경에 거슬려서 예배에 방해가 되었다.
그래서 ‘구루’는 예배 시간이면 고양이를 멀찍이 묶어 놓으라고 시켰다. 그 후 예배 시간이 되면 사람들은 도둑고양이를 잡아 멀리 떨어진 올리브나무 숲에 묶어 놓게 되었다.
‘구루’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예배 시간이면 사람들은 어김없이 고양이를 묶어 놓았다. 얼마 후 고양이마저 늙어 죽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다른 도둑고양이를 잡아 와서라도 고양이를 묶어 놓고 나서야 예배를 드렸다.
세월이 한참 흘러 마을에 다른 도둑고양이조차 보이지 않게 되자, 후손들은 이웃마을로 가서 고양이를 비싼 가격에 사다가 올리브나무에 단단히 묶어 놓은 다음에야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 마을 사람들은 고양이를 묶어 놓지 않고 행하는 예배는 상상할 수가 없게 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구루’의 유식한 제자들이 연구서를 출간했다. 주제는 '저녁 기도를 올리는 시간에 고양이 한 마리를 올리브나무에 묶어 두는 일의 중요성'에 관한 것이었다.
다시 더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고양이와 올리브나무에 대한 연구가 이어졌고, 그에 따른 다양한 학파가 생겨났다. 고양이를 기도 시간 삼십 분 전에 묶어 둬야 하는지 아니면 물푸레나무에 묶어 둬야 하는지, 나무에 묶을 때 몇 미터 지점에 묶어야 하는지 등을 두고, 이들 학회는 지금도 나름대로 치밀하고 세밀한 각종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이 우화를 보며 독서감상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많은 독서감상문 지도서에서 기본형식을 제시하고 있다. 보통은 [제목 / 책을 읽게 된 동기나 까닭 / 전체의 줄거리 / 감명 받은 내용 / 느낌이나 생각 / 감명 받은 내용 / 나의 생활과 비교 / 감명 받은 내용 / 비판, 희망 / 전체적인 느낌, 생각 / 나의 결심 각오, 배울 점] 등이다.
사실 이 형식이 만들어진 것은 나름대로 중요한 까닭이 있었을 것이다. 독서감상문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한 상황에서 이렇게 제시를 해주면 한결 쉽게 글을 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런데 처음 고양이를 올리브나무 숲에 묶어 두었던 까닭이 있었는데 그 까닭은 생각하지 않고 결국 나중에는 그 형식만이 살아남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독서감상문 쓰기에도 되풀이되고 있는 일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언제부터인가 독서감상문은 꼭 위에서 제시한 형식으로 써야 하는 것이 금과옥조가 되어 버렸다.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이 ‘책을 읽게 된 동기나 까닭’이다. 사실 독서감상문에서 뿐만 아니라 연구보고서 등에서도 빠지지 않는 부분이 처음에 연구동기를 쓰는 것이다.
물론 처음에 이런 형식을 제공할 때는 나름대로 글을 쓰게 된 중요한 동기가 당연히 있었을 것이기에 그렇게 제시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이 글을 쓰는 까닭이 거의 대부분 학교 숙제나 각종 대회에 제출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 대부분인데 거기에다 대고 동기를 쓰라고 하니 우스꽝스런 일이 벌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하다보니 아이들 대응 방식이 커다랗게 두 가지가 되어 버렸다. 하나는 너무나 솔직하게 뻔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선생님이 시켜서,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 등 솔직하지만 의미 없는 내용이 펼쳐진다.
또 하나는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쓰는 것이다. 참으로 그럴 듯 해보이게 거짓말로 책을 읽게 된 동기를 갖다 붙인다. 글을 쓰면서 ‘기교’라는 이름으로 거짓말을 쓸 것을 가르쳐야 하는가? 그렇다고 사실 있는 그대로 뻔한 이야기, 민망한 이야기를 쓰게 해야 하는가?
이런 논쟁은 결국 ‘구루’의 유식한 제자들이 어떤 고양이를 묶어 두어야 하는지? 얼마만큼 떨어진 곳에 묶어 두어야 하는지? 논쟁을 벌이는 것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결국 고양이가 예배에 방해되지 않는다면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 이야기는 ‘책을 읽게 된 동기’ 역시 특별한 일이 없다면 쓰지 않으면 될 일이다. 굳이 뭘 써야 하나 골머리를 앓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독서감상문을 지도하거나 심사하는 사람들도 ‘책을 읽게 된 동기’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될 것이다.
글은 솔직하게 쓰는 것이 가장 우선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쓰기 위해서 억지로 지어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샘솟아서 솟구칠 때 자신에게도 의미 있는 글을 쓸 수 있고, 읽는 사람들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억지를 강요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겠다.
이렇게 말한다고 ‘책을 읽게 된 동기’를 쓸 필요가 없다고 가르친다면 그 역시 또 하나의 어리석음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책을 읽게 된 동기’를 특별히 쓸 것이 없으면 그것을 빼는 대신 그 책이 지금 현재 우리에게 가질 수 있는 의미 또는 관련된 일로 글을 시작하도록 하자. 그런 점에서 요즘 독서감상문을 시작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제시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로 여겨진다. 독서감상문 시작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자.
'독서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글쓰기의 첫걸음 - 일상생활에 대한 호기심 (0) | 2009.10.19 |
---|---|
글의 첫인상, 제목이 결정한다! (0) | 2009.10.14 |
글 잘 쓰는 아이, 책 잘 읽는 아이 한순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0) | 2009.10.11 |
좋은 독서감상문은 두 날개로 하늘을 난다. (0) | 2009.09.13 |
야구에서 배우는 글짓기 지도의 지혜 (0) | 2009.09.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