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4일 (토) 여행 (다섯째 날) -
또한 청나라 시대의 고유 문양이 약간 퇴색되었지만 흥미로웠다.
그리고 우리는 그동안 우루무치부터 동행했던 가이드와 기사 그리고
우리 앞에는 35인승 큰 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새차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플 지경으로 좋은 차였는데 소형 승합차가 갑자기 고장 나는 바람에 행운을 차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 또 이동이다. 6시간이 넘는 사막 길을 달리고 또 달려갔다. 버스로 6시간인데 그 옛날 이 길을 대상들은 낙타에 몸을 의지하여 걷고 또 걸었을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죽음의 길에 기꺼이 몸을 던질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동서 문명 교류라는 역사적 사명감이었을까? 아니다. 그저 더 큰 재물을 차지하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였다. 복음을 전파하고자 하는 사명감이었다. 이처럼 강력한 동기가 있어야 그 모든 일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마치 콜럼버스가 새로운 인도 가는 길을 찾고자 했던 것도 황금과 향료에 대한 강렬한 욕구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것을 굳이 천박하다고 부정할 필요는 없다. 여기서 내 생각이 이렇게 서서히 바뀌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돈황으로 가는 길 가이드와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바로 ‘하서주랑’ 때문이었다. 우리는 주랑이라고 해서 양 쪽이 절벽으로 되어 있는 좁은 길을 의미하는 줄 알았는데 그 폭이 수십에서 수백킬로라고 하니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여행 내내 지도를 펼쳐놓고 따지고 또 따졌다. 물론 난 아니지만.. 결국 하서주랑은 돈황을 중심으로 병목현상이 일어나는 모습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말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만큼 돈황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 오아시스였다. 그러하기에 돈황에는 막고굴이라는 위대한 문화유산이 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이곳에는 막고굴 이라는 인류의 노력에 의한 문화유산 말고 명사산 이라는 천연의 자연 유산이 함께 하고 있었다.
가는 길 말로만 듣던 신기루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멀리 물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인 단지 빛의 반사 때문에 일어나는 착시현상에 불과했다. 그래서 사진으로는 촬영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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