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2007여름실크로드

- 8월 4일 (토) 여행 (다섯째 날) -

온 독서논술 2009. 9. 27. 21:21

- 8월 4일 (토) 여행 (다섯째 날) -

 

여행도 이제 중반을 넘어섰다. 아침 일찍 우리는 바리쿤 초원을 찾았다. 이동 도중 내내 사막을 보았는데 어느새 우리 앞에 초원이 펼쳐졌다. 이 초원은 근처 사막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초원이라고 한다. 드넓은 목초지에서 한가로이 말 타고 달리는 유목민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졌는데 우리가 방문한 곳은 이미 관광지로 개발되어 있어서 황토빛 대신 푸른 초원을 본다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다시 산길을 내려와 회족의 왕과 왕비의 무덤이 있는 회왕릉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왕실묘로 그 역사가 200여 년 밖에 되지 않아서 별 감흥을 갖기 어려웠다. 나무로 만든 건축물 같은 특이한 형태의 대형탑이 눈길을 좀 끌 뿐이었다.

또한 청나라 시대의 고유 문양이 약간 퇴색되었지만 흥미로웠다.

 

그리고 우리는 그동안 우루무치부터 동행했던 가이드와 기사 그리고 12인승 이스타나 차량과 작별을 했다. 맘 좋게 생긴 재미있는 기사. 때때로 졸음 운전에 무단 추월로 우리에게 공포감을 주었던 기사님과 헤어지려 하니 아쉬움이 들었다. 짧은 시간에도 정이 들었나보다.

우리 앞에는 35인승 큰 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새차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플 지경으로 좋은 차였는데 소형 승합차가 갑자기 고장 나는 바람에 행운을 차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 또 이동이다. 6시간이 넘는 사막 길을 달리고 또 달려갔다. 버스로 6시간인데 그 옛날 이 길을 대상들은 낙타에 몸을 의지하여 걷고 또 걸었을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죽음의 길에 기꺼이 몸을 던질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동서 문명 교류라는 역사적 사명감이었을까? 아니다. 그저 더 큰 재물을 차지하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였다. 복음을 전파하고자 하는 사명감이었다. 이처럼 강력한 동기가 있어야 그 모든 일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마치 콜럼버스가 새로운 인도 가는 길을 찾고자 했던 것도 황금과 향료에 대한 강렬한 욕구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것을 굳이 천박하다고 부정할 필요는 없다. 여기서 내 생각이 이렇게 서서히 바뀌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돈황으로 가는 길 가이드와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바로 ‘하서주랑’ 때문이었다. 우리는 주랑이라고 해서 양 쪽이 절벽으로 되어 있는 좁은 길을 의미하는 줄 알았는데 그 폭이 수십에서 수백킬로라고 하니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여행 내내 지도를 펼쳐놓고 따지고 또 따졌다. 물론 난 아니지만.. 결국 하서주랑은 돈황을 중심으로 병목현상이 일어나는 모습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말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만큼 돈황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 오아시스였다. 그러하기에 돈황에는 막고굴이라는 위대한 문화유산이 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이곳에는 막고굴 이라는 인류의 노력에 의한 문화유산 말고 명사산 이라는 천연의 자연 유산이 함께 하고 있었다.

가는 길 말로만 듣던 신기루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멀리 물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인 단지 빛의 반사 때문에 일어나는 착시현상에 불과했다. 그래서 사진으로는 촬영이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