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너스 하이’와 ‘리더스 하이’를 누리길 바라며
이미 가빠진 숨은 감당이 안 되었습니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결국 뜀을 멈추고 폴더가 되어 숨을 헉헉거렸습니다. 겨우 200m 남짓 뛰었을 뿐인데. 그런데 대체 어떻게 마라토너들은 42.195km를 제 100m 기록 수준으로 뛸 수 있는 것일까요? 전문 마라토너들이 아니더라도 요즘 10km, 20km 단축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을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체 그들은 그 숨 가쁨을 어떻게 참아낼 수 있는 것일까요? 참아내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은 달릴수록 기분이 상쾌해지고 심지어는 행복감에 도달한다고 합니다. 일명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상태를 체험한다는 것이지요. ‘러너스 하이’는 미국의 심리학자 맨델이 사용한 용어로 달리기를 오래 하다보면 뇌에서 신체의 고통을 잊게 하고 계속 달리게 하기 위해 엔돌핀을 분비시키며, 또한 노르에리네프린의 분비를 증가시켜 우울한 기분을 사라지도록 하는 현상입니다. 보통의 경우 중간 강도의 운동을 30분 이상 계속했을 때 느끼는 행복감으로 마라톤 뿐만 아니라 수영 등 다른 스포츠에서도 동일한 현상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전 달리기나 수영에서 한 번도 ‘러너스 하이’를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보니 달리기나 수영이 재미가 없고, 또 피하게 되고 그래서 더욱 느낄 기회가 안 생기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전 ‘러너스 하이’는 느끼지 못하지만 ‘리더스 하이(Readers' High)’는 어렸을 때부터 경험하며 살았다는 점입니다. 운동을 지속할 때 느끼는 쾌감이 ‘러너스 하이’라면 독서를 하다 느끼는 쾌감, 설렘, 궁금함, 지적 만족감, 깨달음에 대한 기쁨, 가슴 벅찬 감동 등은 ‘리더스 하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러너스 하이’를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반대로 ‘리더스 하이’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의외로 많습니다. 제게 달리기가 그저 힘겨운 일이듯이 책읽기가 졸리고, 따분하고 어려운 과제일 뿐인 사람들도 많다는 얘기입니다.
‘리더스 하이’를 경험한 사람들이 그 마약 같은 중독성 때문에 다시 마라톤에 도전을 하듯이 ‘리더스 하이’는 끝없는 독서의 세계로 우리를 이끕니다. 그렇다면 그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그냥 사람마다 애당초 다르게 태어난 것일까요? 아마도 분명 그런 요소도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자신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러너스 하이’, ‘리더스 하이’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한참 후에야 비로소 그 경험에 이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이 좋은 것을 왜 내가 진즉 몰랐을까’라고 말합니다. 즉 한두 번의 시도만으로 단정 짓기에는 성급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혼자 뭔가를 시작한다는 것이 사실 쉽지 않습니다. 뭔가 계기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가듯이 주변에 마라톤을 하는 친구가 있어 손을 잡아주어야 합니다. 또는 사회적으로 마라톤 열풍이 불어,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맘으로 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독서 역시 누군가 손을 내밀어 함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사회적으로 독서문화를 확산시켜 책읽기 신드롬을 일으켜 많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함께 나설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또한 마라톤이건 수영이건 초기에는 코치가 있어서 적절한 지도가 필요합니다. 사실 기초, 기본 기술이 없어서 마구잡이로 하다 보니 힘만 들고 ‘러너스 하이’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독서 역시 전문가들로부터 적절한 코칭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 전문가의 역할을 각 지역의 공공도서관 사서가 해야 합니다. 학교 도서관 사서가 아이들을 위해 독서코칭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사서는 단지 도서를 대출, 반납하고 서가정리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사서에게 요즘 어떤 책이 읽을 만한 지, 자신의 상황에 맞는 추천도서는 무엇이 있는지 적극적으로 상담해야 합니다. 물론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은 사서들이 많지만 그런 요구가 있을 때 사서들도 스스로 전문성을 높여 준비를 할 것입니다.
마라톤이나 수영 동호회에 들어 함께 할 때 지치지 않고 서로 격려하며 나아갈 수 있는 것처럼 기존 독서모임에 들어가는 것도 좋습니다. 먼저 경험한 선배들의 노하우를 공유하면서 보다 쉽게 ‘러너스 하이’를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어린이들이 ‘리더스 하이’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를 위해서는 과감하게 강요 독서를 포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붙잡고 실컷 읽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전 아직도 기억합니다. ‘오싱’을 보면서 가슴 아파했던 일들,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과 ‘아리랑’, ‘한강’을 보며 그 가슴 벅참에 주체할 수 없었던 기억들.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이 맹획을 일곱 번 사로잡는 장을 읽고 또 읽고 했던 추억들.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을 읽고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아서 모태신앙을 포기하려 했던 일들 등등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은 ‘리더스 하이’가 있었기에 다시 또 다른 ‘리더스 하이’를 갈망하며 책 주변을 기웃거리는 것입니다.
아이들도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도저히 그냥 잠들 수 없는 그런 경험. 정말 밥 먹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빨리 그 책을 다시 읽고 싶은 그런 마음. 그 마음을 아이들이 느낄 수 있다면 굳이 강요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평생을 독서의 세계 속에서 함께 할 것입니다.
저도 ‘러너스 하이’를 체험해보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살면서 한 번쯤은 42.195km는 아니더라도 10km 단축 마라톤에 도전하여 완주하는 기쁨을 누려보고 싶습니다. 세상 많은 사람들이 ‘러너스 하이’, ‘리더스 하이’를 누려서 몸도 맘도 건강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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