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距離)에 관한 짧은 생각 1 - 가까워진 거리, 멀어진 거리
‘거리’의 가장 일반적인 뜻은 ‘비교적 큰길들이 이어져서 오가는 사람이나 차량들이 많은 곳.’입니다. 물론 ‘특정한 일과 관련된 건물 따위가 줄지어 늘어서 있는 길.’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이때의 ‘거리’는 순 우리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생각해보려고 하는 ‘거리’는 한자어 ‘거리(距離)’입니다. ‘둘 사이가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정도.’ 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심리적으로 벌어져 있는 틈.’ 등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류는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물리적 거리를 지속적으로 좁혀 왔습니다. 옛날 걸어 다니던 시절 대전에서 서울까지 나흘 정도가 보통 걸렸습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KTX(고속철)를 타면 불과 50분이면 도착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두 지점을 잇는 시간이 단축되었으니 친구든 친지든 더 자주, 쉽게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옛날에 비해 가까운 사람들 만나기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빨라진 교통수단을 타고 더 멀리 나가 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일가친척이 거의 한동네 모여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전국 방방곡곡에 아니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삽니다. 그러다보니 아무리 빠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더라도 예전에 비해 모이기가 더 힘들어진 것입니다.
둘째는 비용의 증가입니다. 예전에는 걸어 다녔기 때문에 특별히 돈 들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교통수단을 이용하려면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그런 사정이다 보니 교통수단을 이용하기 위해 우리는 많은 시간을 이용해서 돈을 벌어야 합니다.
결국 두 사람을 이어주는 교통수단의 속도는 빨라졌지만 두 사람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확장이 되고, 비용이 증가함으로써 두 사람은 옛날보다 심리적으로는 더 멀어질 수밖에 없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과연 교통, 통신 수단의 발전이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었는가? 때로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전화선 모뎀을 활용해서 pc통신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요란하게 삐이익 소리를 내며 겨우 접속을 해서 글을 주고받고는 했습니다. 사진 하나를 주고받으려면 정말 한참 시간이 걸렸지요. 그러다가 초고속 인터넷이 생기면서 사진을 주고받는 일은 아주 우습게 되었습니다. 금세 뚝딱 전송되는 것을 보고 신기했지요. 그런데 곧이어 우리는 동영상 파일을 주고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차피 걸리는 시간은 예전 환경에서 그림을 주고받던 때와 별 다를 바가 없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전송속도는 더 향상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쯤이면 우리가 주고받고자 원하는 것은 더 큰 용량의 3D동영상이 될 것이고 결국 우리는 비슷한 시간을 소비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결국 과학기술의 엄청난 진보로 우리 삶이 혁명적으로 변화를 겪었을 것 같지만 그 안에 본질은 어쩌면 변하지 않았을지 의문을 제기 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옛날에는 도대체 그 환경에서 어찌 살았을까 의문을 제기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기에 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지 않았을까요? 그렇다고 해서 과학기술의 발전을 거부하자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물론 발전을 추구해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발전이 총체적 발전인지 아니면 그냥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계속 트랙만 바꾸어 맴돌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발전된 과학 기술을 가지고 옛날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행복감은 더 커지지 않을까요? 즉 멀리 떨어져 살 것이 아니라 빨리 갈 수 있는데도 가까이 살 수 있다면 소중한 사람을, 보고 싶은 사람을 더 자주 만나며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입니다. 굳이 3D 영화를 주고받지 않아도 초고속 인터넷망을 이용하여 텍스트만을 사진만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훨씬 만족도가 높아지지 않을까요?
물론 모두가 그런 생활을 누린다면 분명 더 이상 과학기술의 진보는 촉진되지 않을 거라는 결정적 문제가 있지만 분명 이렇게 제안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기에 그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듯합니다.
설령 이 제안에 다수가 동의해서 더 이상 과학기술의 발전이 이뤄지지 않는다 해도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지혜를 이미 터득했기 때문에 좀 더 느리게 발전해나가더라도 쫓기지 않고 기쁨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새로운 삶이 펼쳐질 것이기에 걱정이 없습니다.
그런 삶을 꿈꾸는 저는 비정상인가요? 물리적 거리가 좁아졌는데 심리적 거리는 더 멀어진 이 부조리한 현실을 바꿔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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