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kbs1 인간극장을 즐겨본다. 그래서 잠자리에 누워 가끔 시청소감을 말해주곤 한다. 물론 난 그 이야기를 자장가 삼아 바로 잠들곤 해서 구박을 받지만 말이다. 이번 주는 유독 아내의 이야기가 미주알고주알 끊이지 않는다.
‘우리 엄마 늦복 터졌네’라는 제목으로, 섬진강 시인 김용택(67) 선생님의 어머니 박덕성(87) 할머니와 며느리 이은영(53)씨가 알콩달콩 살아가는 이야기란다. 여느 할머니가 그랬듯이 박덕성 할머니는 18세에 시집을 와서 일찍이 사별을 하고 홀로 육남매를 키우느라 농사일에 자신의 몸을 돌볼 틈이 없었다고 한다. 결국 고관절 괴사, 관절염 등으로 요양병원에 입원해야 했고 그런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기가 무척이나 힘드셨다고 한다. 그런 할머니를 그저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가족들의 맘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여서 온 집안에 먹구름이 가득했다.
비록 힘든 농사일이지만 자연과 이웃과 함께 했던 할머니에게 요양병원은 답답한 지옥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자꾸 짜증만 늘어나고 그게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 악순환이었다. 그런 할머니에게는 다행히 지혜로운 며느리가 있었다. 며느리는 할머니가 평소 바느질을 하셨던 점을 착안하여 수놓기를 권했고 수를 놓으면서 할머니는 무료함도 달래고, 예술 창작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며느리는 까막눈 할머니에게 글을 가르쳐드리고 할머니의 이야기를 받아 함께 시로 탄생시키는 과정을 통해 할머니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했다.
그 결과 요양병원 입원실은 더 이상 답답한 지옥이 아닌 새로운 창조의 공간, 대화가 살아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되고 할머니의 얼굴에 웃음기가 살아나고 그것은 곧 가족의 마음에 기쁨을 안겨주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똑같은 요양 병원 병실이 어떻게 지옥에서 천국으로 바뀔 수 있었는가에 나는 관심이 갔다. 어디 그것이 박덕성 할머니뿐이랴? 요양 병원 병실뿐이겠는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공간이 지옥일지? 천국일지? 는 결국 그 공간을 우리가 어떻게 가꿔 나가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 애당초 천국과 지옥이 절대불변으로 정해졌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지옥을 천국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키포인트는 무엇이었나? 그것은 바로 며느리의 지혜였다. 수놓기와 글쓰기를 권했던 바로 그 지점. 결국 사람은 의미를 먹고 산다. 박덕성 할머니에게 힘든 밭일은 자식을 잘 키워내는 소중한 일이었다. 그 일을 더할 수 없었을 때 본인의 존재이유가 희미해졌고, 아픈 육신이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수놓기와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드러낼 수 있게 되었고 거기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우리는 자신이 선 공간에서 의미 찾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어느 순간 가장 행복한지 자꾸 나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에게도 며느리 이은영씨 같은 조력자가 있으면 좋겠지만 없으면 홀로라도 찾아야 한다.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자력갱생을 넘어서서 내가 함께 하는 가족, 친구, 이웃에게 서로가 며느리 이은영씨가 되어 주어 함께 하는 사람들의 의미발견을 도와주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가 사는 공동체가 천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하루도 서로가 천국을 만들 수 있도록 지혜를 빌려주는 날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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